책, 「이스라엘 땅에서 말씀찾기」가 내왔다(권종렬, 샘솓는 기쁨, 2024년).
이 책은 제목처럼 이스라엘의 “땅” 이야기다. 그리고 “그 땅”을 밟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시선으로 성경을 이해하고, 말씀을 찾는다. 그래서 부제는 “베들레헴에서 욥바까지 인문기행”이다.
책은 총 11가지 Chapter로 구성됐다.
Chapter 1. 영원을 비추는 땅, 베들레헴
Chapter 2. 아픔을 싸매주는 땅, 쉐펠라와 네게브
Chapter 3. 비를 흡수하는 땅, 유대와 사마리아 산지
Chapter 4. 무덤이 가득한 땅, 예루살렘 감람산
Chapter 5. 평화를 잃어버린 땅, 예루살렘 옛 시가지
Chapter 6. 믿음을 시험하는 땅, 유대 광야
Chapter 7. 생명이 흐르는 땅, 요단강과 사해
Chapter 8. 경계를 넘어서는 땅, 이스르엘 골짜기
Chapter 9. 복음이 자라나는 땅, 이방의 갈릴리
Chapter 10. 사랑을 알아가는 땅, 갈릴리 호숫가
Chapter 11. 다시 시작하는 땅, 가이사랴 그리고 욥바
이 책은 “일상적 감각으로 성경 읽기”를 시도한다.
즉 요셉과 마리아 비탈을 오르는 이야기. 예수 탄생 동굴 교회를 들여다보고서는, 그 곳이 과연 예수께서 탄생하신 구유가, 과연 마구간의 그 구유인지를 살펴본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보는 예수 탄생의 구유가, 과연 그 구유인지를 일상적 감각으로 들여다본다.
이 책은 저자의 생각의 산물이 아니다. 관찰의 결과물이다.
예수의 흔적이 남아 있는 이스라엘 땅을 밟고 문뜩 떠오른 어떤 생각을 담지 않았다. 철저하고 치밀하게 그 땅, 그 땅 사람들을 관찰하고 기록한 책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생각의 글짓기가 아닌, 관찰의 글쓰기이다.
그리고 저자는 이 책에서, 철저하게 단문쓰기를 유지했다. 글쓰기에서 단문쓰기는 아우 중요하다. 저자는 단문쓰기로 글을 이어갔다. 좋은 글쓰기 교본이다.
이 책은 책쓰기에서 중요한 ‘개념재규정’를 남겼다.
개념재규정이란? ‘새 옷 입기’ ‘새 생명 불어넣기’다. 어려운 문장이나 단어를 쉽게 설명하되, 아예 새로운 옷을 입히고 새 생명을 부여하는 창조적인 작업이다.
개념재정의 방법은 일단 필요한 단어나 문장의 상식적이고 사전적인 의미를 쓴다. 누구나 사용하고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일반적인 정의이다. 그 다음에 그 일반적인 상식과 사전적인 의미를 뒤집는다.
가령,
“담배를 피우는 일은 독한 것을 들이마시고 더러운 것을 뱉어내는 행위이다”
“가출은 대문을 박차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가슴을 찢고 나가는 행위이다”
이 책의 소제목 하나하나마다 그 개념재규정을 남겼다(p26).
Chapter 1. 영원을 비추는 땅, 베들레헴 “요셉과 마리아 비탈을 오르다”에서 “아비 없는 호로자식이라는 뜻과 크게 다르지 않은 마리아의 아들로 불린 예수님은, 그렇게 버림받은 이의 친구로 오셨다. 그리고 어머니 배 속에서 제 날짜도 채우지 목한 팔삭둥이 조산아(早産兒)로 오신 예수님은 모든 생명의 구원이 되셨다”
이처럼 글쓰기와 설교에서 개념재규정은 뻔한 설교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기에 아주 중요하다. 그러므로 소제목의 결론에 남긴 개념재규정 하나하나가 설교자들에게는 한 편의 좋은 설교가 되기에도 충분하다.
다음은 저자 권종렬 목사와의 인터뷰 내용이다.
Q. “나는 성경의 본문 텍스트에 갇혀 있었다”고 말씀하셨다. 저자는, 책에서 그 의미의 부정적인 부분만 언급하셨다. 긍정적인 의미는 없는가?
A. 성경 본문 텍스트에 갇혀 있었다는 말은 부정이 아닌 기본 전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성경을 본문 자체로 읽고 연구하고 묵상하는데 진력했습니다. 성경이 스스로 말하게 하는 최선의 방법이 성경 본문 텍스트의 언어적 구조적 문맥적 연구를 통해 도출된 메시지이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29장 29절 말씀처럼 설교자는 하나님 여호와께 속한 감추어진 일을 찾아 전하는 자가 아닌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한 나타난 일을 온전하게 전하는 자입니다. 이를 위해 본문 텍스트를 붙들고 씨름하는 것은 여전한 가치입니다.
다만 성경 본문 텍스트를 둘러싸고 있는 인간의 지리적 자연적 사회적 문화적 환경을 충분히 이해할 때 텍스트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를 온전하게 한다는 것을 새롭게 깨닫게 되었음을 강조하는 표현일 뿐입니다.
이제 “Chapter 1. 영원을 비추는 땅, 베들레헴”만을 놓고 이야기를 이어가자. 다른 Chapter에서 밝힌 “땅”의 이야기는 독자들이 느끼고 본 바를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찾기를 바란다.
Q. 왜 베들레헴이 영원을 비추는 땅인가?
A.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빛이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영원을 비추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으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요1:9-11)
나아가 베들레헴에서 시작된 영원을 비추는 빛이 욥바에서 지중해 너머 세계를 비추는 빛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Q. 동방박사들이 황금과 유황 그리고 몰약을 가지고 큰 별을 바라보며, 그 긴 거리를 긴 시간을 들여 베들레헴으로 들어온, 그들만의 절박함이 무엇일까? 하나님께서 동방박사들을 이끌었다는 하늘의 이야기가 아닌, 동방박사들이 가진 땅에서 들을 수 있는 그들의 그 절박함은 무엇일까?
A. 성경 본문 속 인물들의 입장에서 말씀을 묵상해야 한다고 역설하면서도 동방박사들의 절박함은 생각해 보지 못했네요. 다만 그들의 고단한 삶의 힘겨움이 미래를 알고자 하고 위대한 구원자를 고대하게 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현실의 모순과 부정이 커질수록 새로운 세상을 향한 갈망이 더 깊어졌을 것입니다. 하늘의 별을 보며 별점을 치던 이들 곧 현실 너머 초월적 계시에 대한 갈망이 누구보다 컸을 그들에게 하늘의 징조는 그 먼 길을 찾아오게 했을 것입니다.
Q. 그동안 한국교회에서 삯을 받는 삯꾼 목자들을 비난했다. 그러나 삯꾼 목자들은 삯을 받아야 살 수 있는 목자, 삯을 받아서 생계를 유지하는 목자들이다. 그렇다면 삯꾼들이 비난받아야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당시 이 삯꾼 목사들이 비난받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 삯꾼 목자와 비교해서 선한 목사는 어떤 목자인가?
A. 그렇습니다. 우리는 일차적으로 ‘삯꾼 목자’를 무시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존중해야 합니다. 삯꾼은 악한 사람도 아니고 무책임한 사람도 아닙니다. 자신이 받을 삯에 합당한 책임을 다하는 일꾼일 뿐입니다.
그러나 성경 시대 삯꾼 목자는 기본적으로 안식일 법을 비롯한 율법을 태생적으로 지킬 수 없는 존재입니다. 어쩔 수 없는 삶의 절박함 속에 삯꾼 목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들을 함부로 비난하고 비하하는 배경 속에 온갖 억측과 오역이 덧씌워졌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목자로 비유하신 것은 이런 삯꾼 목자의 삶을 천시한 것이 아니라 그들과 동일시하며 그들을 존중하신 것입니다. 다만 삯꾼 목자와 달리 선한 목자는 자신이 받을 삯만큼이 아닌 그 이상 아니 자신의 목숨까지도 양을 위해 내어주는 목자입니다. 사실 이 땅에서는 만날 수 없는 목자입니다. 세상에 없는 목자 그분이 바로 양을 위해 죽으신 예수님입니다.
한 알의 밀이 떨어져 죽으면 산다는 말씀이 선한 목자의 삶입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 목회 현장을 돌아보며 삯꾼 목자만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자기 삯만큼만 이라도 양을 위해 사는 목자를 만나고 싶습니다. 목자의 탈을 쓴 이리들이 득실거리는 듯합니다. 양을 위해 교회를 위해 죽을 수 있는 목자는 어쩌면 세상에 없는 목자라는 생각이 깊어집니다.
저자 권종렬 목사
그는 1993년 3월, 총신대학교신학대학원에 입학하면서 경기도 광명시 한우리교회를 개척하여 31년째 교회를 섬기고 있다. 총신대학교와 총신대학교신학대학원에서 공부했다. 지난 31년 동안 오직 성경으로만 교회와 성도들에게 유익이 되도록 힘써왔다.
<최성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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