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문 선교사(총신대학교신학대학원 89회)
그저 가르치려고 애를 쓰는 이, 그런 글과 말 그리고 이론으로만 가득찬, 최소한 글쓴이 자신은 실제로 그렇게 살아본 적이 없는 주장, 나는 거리감과 거부감을 느낀다.
그래서 이런 책과 글, 이야기가 좋다.
각 장마다 토론을 위한 질문도 제시하고 있다.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돌아보며 일상속에서 글쓴이와 함께 반응하자고 제안하는 것 같다.
이런 식이다.
”2. 여러분의 교회나 직장에는 인종 또는 민족적 배경, 경제적 계층 이나 문화적 정체성이 유사한 사람들이 어느 정도 소속되어 있 는가?이런표지들은그렇지않은이들에게어느정도심리적장 벽으로 작용할까?“(108)
이 책은,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 타자 혐오 시대, 그리스도인의 사랑과 환대에 관하여>라는 이름을 달고 곧 나올, 윌리엄 윌리몬의 <Fear of the Other>이다. 168쪽 밖에 안 되는데, 저자와 마음과 말을 주고 받는 느낌이다. 타자 혐오 시대에 그리스도인의 사랑과 환대를 주제로 그렇다.
1장. 타자에 의해 구원받다.
2장. 타자, 나의 적.
3장. 그리스도인답게 두려워하는 법 배우기.
4장 교회안의 타자 사랑하기.
5장 우리의 참된 타자이신 예수님 등으로 구성하고 있다.
이 중에서 가장 먼저 눈길이 닿은 것은, 3장이다.
저자의 성경 이해도 신선하다. 내가 좋아하는 방식이다. 선한사마리아 사람 비유 풀이에 이렇게 묻는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우리가 누구의 이웃이 되어야 할까에 관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누가 우리에게 이웃이 되어 줄 지에 관한 이야기다. 지금도 우리에게 다가오는 그 ‘타자’, 우 리가 몹시 두려워하며 꺼리지만 그 손길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우리를 위기에서 건져내 줄 그 존재는 과연 누구인가?”(p154)
집나간 아들 이야기에 익숙한 우리에게, 저자는 이렇게 묻는다.
“이때 그 아버지는 어디에 있는가? 아버지는 어두운 집 바 깥에 나와 스스로 ‘타자’가 되어 버린 형에게 집에 들어가 함께 기뻐하며 동생과 교제를 나눌 것을 간곡히 권하고 있다. 이는 곧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하라는 요청이다.”
생각이 바뀌기 전에 시선이 바뀌어야 한다. 그것은 몸으로 겪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을 때가 많다. 누군가를 혐오할까 고민하고, 혐오를 정당화하느라 분주한 이 시대, 한국 사회와 한국 교회에, 이 책은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아주 사소한 아쉬움이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들과 이슬람교도들이 섬기는 신이 서로 다르다고 믿는다”(p105)에서 ‘이슬람교도’라는 표현이 그것이다. ‘무슬림’으로 표기하면 좋았겠다. 사소한 것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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