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신종플루가 유행하던 해에 동강의 작은 마을들이 왕래를 못하고 자가 격리에 들어갔던 일이 이제서야 기억난다. 그리고 더 특별한 기억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당시 지병으로 자리에 누우신 할머니는 움직이지 못하는 노령에 예수를 영접했고, 매주일에 내가 찾아가 예배를 드렸다.
집에서 누워서 세례 받고, 집에 누워서 동강교회 집사가 됐다. 교회 한번 못 나오시고(이런 경우를 나는 우스개소리로 집구석 교인이라 한다). 그러던 차에 신종플루로 석 달을 못 찾아 뵈었다. 그리고 석달후 찾아간 예배에 할머니는 눈물을 흘리시며 “목사님 못보고 하늘나라 가는 줄 알았지 머여!”라며 하염없이 우시고 주일예배를 드렸다 그리고 그동안 못 드린 예배의 헌금이라며 13만원을 꼬깃거리는 돈으로 헌금하시며 매주 모았다 하신다.
눈물이 났다. 누워서 기다린 예배를 꼬박꼬박 세어가며 매주 만원씩 모아두셨다가 드리는 그 예물. 부끄러웠다. 그리고 그 헌금을 차마 쓰지 못하고 고이 간직했다.
“목사님~ 장로님 두 분 다시 한 번 축하드리고 정말 감사합니다^^ 저의 현실은 아직은 해결해야할 시련이 남아있지만 목사님과 교회가족들 덕분에 제 영혼이 조금씩 살이 붙으니 이겨내고 해결해 나가는 과정들이 전처럼 힘들지만은 않네요.
무신론자에서 사이비종교로 허송세월을 지나 동강교회의 품으로~~ 오늘따라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의 감정에~ 그저 감사한 마음이 생겨나네요~ 더 열심히 생활하고 더 참된 하나님의 자녀로 영혼이 성장하는 기독교인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제 걸음마 첫 단계인 초보라 근사한 기도는 못하지만, 마음만은 정성 다하여 동강교회 가족들을 위해 늘 기도할게요. 모두들 고운밤 되세요~^^”
“목사님과 동강가족 여러분들이 김옥자에게 기도를 많이 하여 주시어서 토요일 날 퇴원하여 집에 와 있습니다. 동강가족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1992년 남편이 산에서 친구와 담배를 피우다 산불을 내고 징역 5개월과 1천만 원의 벌금을 물어야 했다. 당시 남편은 징역을 살고 벌금을 내기위해 막노동을 하던 중 쓰러져 지병으로 사망한다.
남편은 할머니에게 유언을 했다. 나라의 벌금을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식에게 물려주지 말고 갚아 달라고. 이에 할머니는 행상과 허드렛일로 버는 돈으로 매달 몇 만원 씩 남편의 친구를 통해 산림청에 벌금을 20년 동안 꼬박꼬박 갚았다.
할머니가 20년 동안 분할 상환해 온 벌금이 10만원이 남았을 때, 산림청에서 이 사실을 알게 되어 세상에 알려졌다.
그러나 26만원을 전 재산이라 하면서, 몇 천억 원의 국민혈세를 탈세하고 발포 책임도 수십 년 동안 발뺌하는 썩은 전두환과 같은 이도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