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관의 글쓰기】 93년 11월 16일 총신원보사 제93호 기사 기사입력 2020.12.23 16:40 댓글 0 【최성관의 글쓰기】 93년 11월 16일 총신원보사 제93호 기사 -정화조 12월 말 완공- “‘하수종말처리’를 위한 대단위 정화조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지난 10월 둘째 주에 착공된 이번 공사는 약110평의 크기로 도서관 완공일에 맞추어 12월 말에 완공될 예정이다. 그동안 2급 상수지역인 이곳에 정화조 미시설로 인하여 당국의 개선명령과 인근 주민들로부터 항의를 받아왔다. 이번 공사의 시공은 신성공영이 맡았고 백산건설이 기술지원을 하고 있다.” ● 이 기사는 총신대학교신학대학원 총신원보 제94호(1993년 11월 16일, 7면 단신)에 실린 원고지 1장 분량의 기사이다. 1993년 3월 총신대학교신학대학원에 입학해서 6월 수습기자가 됐고, 10월 19일 정기자가 되면서 쓴 첫 번째 기사였다. ● 이 원고자 1장 분량의 기사는, 무려 10번이나 퇴짜를 맞은 후에 11번째 만에 겨우 OK를 받은 기사다. 당시 나이가 5살이나 적은 선배가 10번이나 퇴짜를 놓았는데, 전혀 마음이 상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자 작성을 배운다는 마음에 거저 싱글벙글하며 기사를 쓴 기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 총신원보사는 오직 기숙사를 얻기 위해 들어갔다. 기숙사는 당시 부족해도 너무 부족했기에 오직 대전 이남(以南)의 원우들에게만 배정됐다. 때문에 몇몇 원우는 도서관 주변에 텐트를 치고 학업을 이어가야 할 만큼 기숙사가 많이 부족했다. 당시 1학년은 모두 6개 반에서 무려 약1,600명이 공부했다. 6개 반은 1,2반과 3,4반 그리고 5,6반이 합반해서 공부했는데, 한 반에 500명이 넘었다. ● 92년 5월에 결혼하고 강서구 신정동에 신혼집을 마련하였기에 양지 기숙사 입소는 어림도 없었다. 때문에 매일 신정동에서 양지 캠퍼스로 학교를 오갔어야 했다. 신정동에서 버스를 타고 영등포역 롯데백화점 앞에서 양지 가는 버스를 탔다. 45인승 버스는 50명이 넘는 원우들로 항상 만원이었다. 영등포에서 양지까지 교통사정이 좋지 않으면 2시간, 수월하면 1시간 30분이 소요된다. 영등포역에 조금만 늦게 도착하면, 거의 2시간을 서서가야만 했다. 조금 일찍 영등포역에서 빈 버스를 기다렸다 탔기에 날마다 좌석에 앉을 수 있었다. 반면 양지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는 조금 넉넉했다. ● 그렇게 93년 1학기를 보내니, 학교 다니기가 너무 힘들었다.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그래서 몇몇 원우들과 함께 학교 입구에 있는 양지마을에다 작은 월세 방을 계약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 방을 이용하지 않았다. 3개월쯤 지나자, 집주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집주인은 밀린 월세를 요구했고, 또 방을 계속해서 사용할 것인지를 물었다. 아차! 싶었다. 급하게 방 계약에 참여한 원우들에게서 월세를 걷고, 서둘러 방 계약을 끝냈다. ● 1학기가 마무리가 될 즈음인, 6월 초 방학을 앞두고 한 선배가 ‘총신원보사 기자를 한번 해 보지 않겠냐. 기숙사를 제공한다’며 제의했다. 기자에 대한 관심보다, 기숙사가 귀에 확! 들어왔다. 얼른 그 선배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수습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그때 나이 33살이었고, 총신원보사에서 나이가 가장 많았다. 【기사 다시 쓰기 】 -정화조 12월 마련한다- “‘하수종말처리’를 위한 대단위 정화조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지난 10월 11일에 착공된 이번 공사는 약110평의 크기로, 12월 도서관 완공일에 완료할 예정이다. 그동안 양지캠퍼스는 2급 상수지역이었지만, 정화조가 설치되지 않아 당국의 개선명령과 인근 주민들로부터 항의를 받아왔다. 이번 공사의 시공은 신성공영이, 기술지원은 백산건설이 한다.” <저작권자ⓒ합동기독신문 & ikidok.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BEST 뉴스 책, 「이스라엘 땅에서 말 ·【최성관의 수다】 “우리는 왜 부정행위에 끌리는가?” ·【최성관의 수다】 개혁교회는 유목민이다 위로 목록 댓글 작성을 위해 로그인 해주세요. 등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