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며 살자!
본문: 고린도전서 1:26-31
설교: 양주신흥교회 김철중 목사
오늘날 우리는 십자가에 너무 익숙해졌다.
그러나 그 익숙함 속에서 잃어버린 것이 있다. 십자가는 원래 로마의 가장 흉악한 형틀이었다. 고통과 죽음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교회의 상징이 되었고, 때로는 단순한 장식품이 되었다. 십자가가 ‘녹십자’나 ‘적십자’처럼 소망과 생명의 표식이 되었지만, 그 본래의 의미는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초대교회 시대에 십자가는 결코 자랑의 상징이 아니었다.
2세기경 로마가 십자가 형벌을 폐지하면서부터, 비로소 십자가가 그리스도인의 상징이 되었다. 그 전에는 ‘익투스(물고기)’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구세주”라는 신앙고백의 표현이었다. 당시 성도들은 이마에 십자가 성호를 그리며 신앙을 지켰다. 오늘날 우리는 십자가를 영광의 상징으로 여기지만, 때로는 그 의미를 잃은 채 장식처럼 걸고 다닌다.
그렇다면, 나에게 십자가는 어떤 의미인가?
당시 헬라인들은 지혜로 세상을 바꾸려 했고,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하며 세상의 변화를 기대했다. 그러나 지혜와 표적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오직 십자가이다.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가 담겨 있다. 십자가는 사람을, 세상을, 그리고 역사를 바꾼다.
성경은 이 십자가의 도를 ‘로고스’, 즉 말씀이라고 부른다.
십자가의 도는 단순한 교훈이 아니라, 구원의 말씀이다. 그러나 유대인에게 십자가는 거리끼는 것이며, 헬라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 한다. 왜냐하면 십자가는 하나님의 능력이며 하나님의 지혜이기 때문이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만나는 자리이다.
이슬람 코란에도.....
이슬람의 경전 코란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죄가 기록되어 있지 않다. 코란은 예수의 동정녀 탄생과 부활, 재림을 언급하지만, 고난과 대속의 십자가는 부인한다. 예수를 선지자 중 한 사람으로만 여긴다. 그러나 기독교의 중심은 바로 이 십자가의 대속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죄를 대신한 대속물이 되셨고,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승리의 선언을 하셨다.
하나님은 영광을 포기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양보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이 자신께 영광 돌리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인간은 스스로 영광을 취하려 한다. 하나님은 교만을 미워하시며,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이유도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자랑은 인간의 공로나 업적이 아닌, 오직 하나님께 있어야 한다.
우리의 본적(本籍)은 하나님 안에 있다.
우리의 현주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지혜, 의로움, 거룩함, 구원이 되셨다. 우리가 자랑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뿐이다.
“너희가 그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9)
사도 바울은 말한다.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고전 4:7)
그리고 로마서 11장 36절은 이렇게 선언한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하나님은 교만한 눈, 거짓된 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을 미워하신다(잠 6:16).
그러므로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나를 아는 것과 여호와를 아는 것이라”(렘 9:23-24)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지니라(고후10:17).
결론
세상은 성공을 자랑하지만, 우리는 십자가를 자랑해야 한다.
그것이 구원받은 자의 표식이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이다.
오직 주만 자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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