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총회이슬람대책위원회 정책간담회 ①】 -총회이슬람 대책위원을 경험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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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이슬람대책위원회 정책간담회 ①】 -총회이슬람 대책위원을 경험하면서-

기사입력 2021.03.15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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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교 목사.jpg

제104총회 이슬람대책위원장 정영교 목사

 

나는 이슬람 대책위원이 되기 전 이슬람교와 무슬림에 대해서 별다른 지식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심각성을 깊이 알지도 못했다. 하지만 지난 2년을 보내면서 바른 진리 수호와 바른 복음 전파를 위해 이슬람교와 무슬림을 아는 것 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했다. 앞으로도 그것이 하나님의 일이요 나의 사명으로 알고 최선을 다해 이슬람 대책 위원회에 관심을 가지고 협력하기를 원한다.

 

일을 하면서 나는 이슬람 전문가들 중에는 이슬람교, 무슬림에 대해서 지나치게 두려워하고 혐오하는 포비아가 있고 그와 반대인 내부자가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며 어떤 전문가를 강사로 세울 것인 가 고민하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 내가 총회세계선교회(GMS) 중동위원장을 맡고 있었기에 중동의 선교 현장을 방문하여 세미나를 하면서 선교사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러면서 내가 깨달은 바로는 보편적으로 선교 현장의 목소리는 역시 우리 교단 개혁주의 정신인한편으로 경계하고 한편으로 사랑하자라는 것이었다. 물론 우리 교단 이슬람대책위원회 세미나 및 아카데미 주 강사인 유해석 선교사의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이슬람대책위원회가 왜 필요한가?

 

최근 세계 통계보고서에 의하면 전 세계 인구는 약 77억 명이 넘었다. 그 가운 데 23% , 175천만 명의 무슬림이 지구상에 살고 있다. 전 세계 인구 다섯 명 가운데 한 명이 이슬람 종교를 가진 무슬림(Muslim)이다. 역사적으로 한국에서 이슬람은 생소한 종교였으나 어느새 약 만 명 이상의 기독교 여성들이 무슬림과 결혼하였으며 그들이 당하는 어려움은 또 하나의 가나안 성도를 만들며, 한국교회에 어려움을 가져다주고 있다. 그리고 유럽에 일어나는 테러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그럼으로 "한편으로 경계하고 한편으로 사랑해야 할 내용들을 알려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슬람 인구 성장에 따른 한국교회의 대안

 

2001년 오사마 빈 라덴을 배후로 한 탈레반 무장 단체가 세계무역센터 및 펜타곤 공격을 하여 약 3,000여명의 무고한 희생자를 내면서 이슬람에 대한 극도의 부정적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이 테러 사건은 이슬람에게 부정적 영향만 끼친 것은 아니다. 이 테러 사건 이후 미국인들 60%이상이 이슬람과 아랍 세계를 이해하고자 하는 열망이 과거에 비해 급증했다.

 

9/11 테러 사건 이후 이슬람 관련 서적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면서 이희수 교수 같은 경우 그의 저서에서 9/11 테러의 희생자들을 향한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하는 동시에, 이 일을 주도한 주범들이 이슬람 신앙의 정통성에서 벗어난 이단들이라며, 그 선을 명확하게 그으면서 이슬람 신앙 근본은 테러가 아닌 평화를 지향한다고 독자들을 설득했다.

 

그러나 2014629일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의 Islamic state 설립 선언과 함께 그를 추종하는 무적 단체들이 본격적인 테러 활동을 시작하자, 이슬람을 옹호하는 그들의 노고가 수포(水泡)로 돌아갔다. 대다수의 한국 국민들은 IS를 이슬람의 한 지류로 이해하고 이슬람에 대한 혐오적 태도를 쉽게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슬람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이슬람에 대한 정확한 지식과 함께 개혁주의 입장에서 이슬람에 대한 대안이 제시되어야 한다. 칼빈, 츠빙글리, 불링거, 에라스무스와 같은 신학자들이 이슬람을 연구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는 오스만 터키의 유럽 침공이 있었다. 이슬람 세계의 새로운 지배자 오스만 터키가 1453년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켜 비잔틴 제국을 멸망시키고, 계속하여 발칸 반도와 중앙아시아로 진출하여 광대한 지역을 점령하자, 이후로 이슬람은 정치적, 종교적인 핵심 문제에 속하게 되었다. 이렇게 이슬람의 유럽 침공이 종교개혁의 배경이 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종교개혁자들은 이슬람에 대하여 기독교의 타락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로 보았다. 이러한 종교개혁자들의 태도는 오늘날 한국 기독교에도 적용된다. 한국교회는 물질주의, 성장주의, 개교회주의, 목회자의 윤리문제 등 현상을 빠르게 진단하여 뼈를 깎는 고통을 감수하며 교회를 새롭게 세워나가야 할 것이다. 루터나 츠빙글리는 이슬람의 유럽 침공을 하나님의 징계로 보았으며 십자군 전쟁을 반대하였다. 그 이유는 십자군이 교황의 손에 들어가서 복음을 가로막는 용도도 잘못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츠빙글리는 십자군 전쟁 대신에 무슬림에 대한 선교적 가능성을 고려하였다. 이와 같이 종교개혁자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칼을 들고 무슬림과 싸우는 십자군 전쟁을 단호하게 반대하였다.

 

루터 당시에 오스만 터키에 포로로 잡혀 갔던 기독교인들이 많이 있었다. 그들은 늘 탈출할 것을 생각하였다. 그러나 루터는 그들에게 제국으로부터 도망치려고 하지 말고 오히려 오늘의 현실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드리고 지속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 의로움을 기억하며 무슬림들을 사랑하고 섬기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라고 권면하였다.

 

기독교인의 삶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지는데,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다. 루터는 무슬림을 바라볼 때, 증오와 분노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다가가야 한다고 했다.

 

종교개혁자들은 단순한 공존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사랑하고 섬김의 삶을 살라고 권면하고 있다. 앞으로 이슬람 선교는 더 많은 희생과 순교를 각오해야 할 지 모른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복음을 무슬림들에게 가지고 갈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 사역에 한국교회와 한국 기독교인들이 쓰임 받기를 원한다. 이것이 이 땅에서 수고했던 많은 선교사들에게 진 빚 그리고 무엇보다도 복음의 빚을 갚는 것이다. 또한 이 땅에 들어온 무슬림들 향하여 교회의 문을 활짝 열어야 한다. 진리를 찾아서 방황하는 그들을 따듯하게 맞이하여야 한다.

 

그러면서도 교회가 이슬람에 잘 대응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1. 이슬람이 적그리도적인 종교이기 때문이다.

2. 그리스도인을 유혹하여 넘어지게 하기 때문이다.

3. 사람의 삶을 황폐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한국 교회는 지금까지 이슬람 선교에 있어 방어적인 입장을 고수 해 왔다. , 외국 무슬림들의 한국 유입을 막고, ‘이슬람 포비아 운동을 통해 한국 사회에 이슬람 혐오증을 유발시키고 있다. 그러나 나는 교회가 이슬람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통해 이슬람을 바로 알고, 성도 개개인이 바른 신앙의 형태를 선택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이슬람의 실체를 알고, 아울러 복음의 가치성을 바로 인식해 다시 하나님 나라를 꿈꾸는 사람들로 인도해야 한다.

 

더 이상 내국인 무슬림 성장을 수동적이거나 방어적인 자세로 접근하지 말고, 겸손하면서도 자신감 있고, 적극적인 자세로 이슬람 선교를 준비하고, 내국인 무슬림들을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이끌어 줄 책임이 한국 교회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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