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총회이슬람대책위원회 정책간담회 ② 고광석 목사(총신대학교 목회신학전문대학원 선교학 교수,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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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이슬람대책위원회 정책간담회 ② 고광석 목사(총신대학교 목회신학전문대학원 선교학 교수, Ph.D)

-이슬람 혼합주의 운동 : 크리슬람과 내부자운동-
기사입력 2021.03.11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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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혼합주의 운동 : 크리슬람과 내부자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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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광석 목사(총신대학교 목회신학전문대학원 선교학 교수, Ph.D)

 

 

혼합주의는 이슬람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종교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 이슬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혼합주의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1. 크리슬람(Chrislam)

 

이슬람의 극단주의자들이 지하드를 실행함으로 전 세계는 테러공포에 휩싸여 있다. 이런 이슬람과 무슬림에 대해 공포를 느끼거나 혐오하는 것을이슬라모 포비아’(Islamophobia)라고 한다. 이 말은 1980년대 후반에 만들어졌지만 2001911일 미국에서 일어난 9·11 테러 이후 본격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슬라모포비아(Islamophobia)이슬람’(Islam)포비아’(Phobia)를 합성한 말로 포비아는 강박적인 공포로 인한 이상 반응인공포증’(恐怖症)을 의미 한다. , ‘이슬람 공포증또는 이슬람 혐오증을 의미한다. 그 결과로 무슬림에 대한 적대감과 공포 혹은 편견 등으로 나타나는데 이런 현상의 가장 큰 요인으로는 IS 등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들이 일으키는 무차별 테러 때문이다. 이런 이슬라모포비아 현상을 방지하고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에서 만연하고 있 는 기독교와 이슬람의 분쟁을 종식시키고 평화로운 공존을 모색하기 위해 시작 된 운동이 크리슬람 운동이다. 실제로 크리슬람 운동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 삼수딘 사카(Shamsuddin Saka)는 자신이 메카를 두 번째 순례할 때 기독교인들과 무슬림들 사이에 평화를 이루라는 계시를 받고 시작했다고 말하고 있다.

 

(1) 크리슬람의 의미

 

크리슬람’(Chrislam)은 기독교를 의미하는 ‘Christianity’와 이슬람을 의미 하는‘Islam’을 합해 놓은 합성어(Chri+slam)이다. 기독교와 이슬람 간의 갈등을 해소 시키고 대화와 교류를 통해 양 종교 간의 평화를 이루려는 운동인데, 전형적인 종교혼합주의의 산물이다. 그래서 이 운동을 실천하기 위해 아프리카나 미주지역을 중심으로 기독교인들과 무슬림들이 특별한 행사에서 함께 연합하여 예배도 드리고, 심지어 한 교회에서 성경과 꾸란을 사용하는 사제가 기독교와 이슬람을 혼합하여 여호와알라를 부르며 예배를 진행하는 크리슬람 교회도 생겨났다.

 

(2) 크리슬람 운동의 시작

 

크리슬람운동은 1980년대 나이지리아 라고스(Lagos)에서 시작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나이지리아는 250여개의 종족이 한 나라 안에 살고 있는 최다 종족국가이면서 동시에 남부지역의 기독교(전체 인구의 약 40%)와 북부지역의 이슬람(전체 인구의 약 50%)이 거의 반반의 나뉘어 종족간의 내면적 갈등이 종교라는 외면적 분쟁으로 분출하는 특별한 나라이다.

 

나이지리아의 250여개의 종족 중에 주요 3대 종족은 하우사플라니(하우사 과 플라니의 혼혈족, 이하 하우사족)과 요루바그리고 이그보인데, 이들 종족들은 대체로 북부 지역에는 하우사족이, 남동부 지역에는 이그보족이, 그리고 남서부 지역에는 요루바족이 거주지하고 있다. 그래서 북부의 하우사족 은 거의 무슬림들이고 남동부의 이그보족은 가톨릭이 주류를 이루고 있고, 남서부의 요루바족은 거의 성공회나 감리교 등 기독교인들이다. 그 배경에는 1900 년대 영국이 식민통치를 하면서 종족간의 연대를 막기 위해 의도적으로 분할통치 정책을 썼던 것이다. 그래서 북부 하우사족에는 선교사의 활동(파견)을 억제한 대신 정치적·군사적 힘을 부여했고, 반면 남부 이그보족과 요루바족에는 선교사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했고 또한 영국정부의 투자를 집중함으로 경제적 힘을 부여했다.

 

따라서 이들 종족들 간에는 정치적 헤게모니와 아프리카 최대의 산유국 및 자 원국이라는 경제적인 문제로 끊임없이 분쟁이 발생했는데 그 분쟁의 표현방식 이 기독교와 이슬람이라는 종교 간의 분쟁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양 종교 간의 분쟁이 가장 심한 곳이 조스(JOS)이다. 조스시는‘Jesus Our Savior’의 약자를 따서 지은 도시 이름으로 기독교 도시임을 알 수 있는데 행정구역은 북부 이슬람 주 12개 가운데 하나인 플라투에 속해있다. 특히 조스시는 대규모 광산이 있는 지역으로 광산의 헤게모니를 기독교인들(베롬족·아피제레족·아나 구타족 등 군소종족)이 장악하고 있어 다수의 무슬림들(주류 하우사족)과 경제적 이유, 종족간의 갈등 그리고 종교 간의 마찰이 얽혀 수시로 유혈분쟁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종족과 종교 간의 끊임없는 갈등과 분쟁을 기독교와 이슬람이라는 종교의 힘으로 해결해 보자는 지극히 정치·종교 공학적인 발상으로 시작된 종교운동이 크리슬람이다.

 

현재의 크리슬람 운동은 1999년에 삼수딘 사카(Shamsuddin Saka)에 의해 종교적 형태를 갖추었다. 무슬림 가정에서 출생한 그는 메카 카아바 신전을 네 번이나 순례했던 독실한 무슬림이었다. 사카가 두 번째 메카를 순례할 때 기독교와 이슬람의 신은 동일한 하나님이니 함께 예배드림으로 평화를 이루라는 영감을 받고, 나이지리아 최대 도시인 라고스(Lagos, 1991년까지 수도였고, 현재는 중부의 아부자가 수도)에 기독교와 이슬람의 평화를 위해 크리슬람을 설립하였다. 그 후 크리슬람은 아프리카의 주변국들과 중동지역으로 퍼져 나갔으며 미주지역으로 확산되어 각 지역에 여러 개의 크리슬람이 세워지기도 했다. 크리슬람 운동은 미국의 교회들에 영향을 끼쳐 무슬림들에게 예배장소를 개방해주고, 아랍어 표기와 함께 광고를 통해 금요일 크리슬람 예배를 알리고, 추수감사절·부활절·성탄절 등 기독교 절기에는 이웃 무슬림들을 초청하는 축제를 열기도 한다. 크리슬람 운동에 참여하는 기존의 기독교 교회들은 주일에는 목회자가 가운입고 예배 인도하고 금요일에는 교회를 개방하여 검은 스카프를 쓴 무슬림들과 예배드리고 있다. 이들은 기독교와 이슬람은 기본적으로 차이가 없다고 여김으로 같은 장소에서 함께 모인다. 물론 그들은 서로에게 거슬리는 용어와 표시는 사용하지 않고 서로의 평화를 기원하고 있다.

 

크리슬람 운동은 종교계뿐만 아니라 세계평화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정치권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일례로, 새들백교회의 릭 워렌(Rick Warren) 목사는 20091월 버락 오마바 (Barack Obama) 대통령의 취임식 때 기도의 마무리를 예수아(유대식 발음), 이사(Isa 이슬람식 발음), 헤수스(히스패닉 발음), 그리고 지저스(영어식 발음) 이름으로 아멘으로 마침으로 복음주의 교회들에 충격을 주고, 세계 기독교계에 논란을 일으킨 바가 있다. 물론 본인의 해명으로는 예수님을 히브리어와 아랍어와 스페인어와 영어로 고루 불렀을 뿐이라고 하지만, 일부에서는 유대교와 이슬람과 기독교를 하나로 묶으려는 혼합주의적 발상에서 그렇게 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지난 1월에 취임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 때도 대통령이 다니던 성당의 신부와 델라웨어 지역의 감리교 흑인목사 실버스터 비맨(Silvester Beaman)이 기도했는데, 그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를 마치지 않고, “In the strong name of our collective faith, Amen.”(우리 공동체 신앙의 강력한 이름으로, 아멘)이라고 마무리했다.

 

분명한 것은 릭 워런을 비롯하여 수정교회의 원로 로버트 슐러(Robert Schuller) 목사와 방송인 잭 벤 임프(Jack Van Impe)가 크리슬람에 적극적이라는 사실이다. 이에 미국의 정치권에서도 크리슬람을 종교평화와 세계 평화 정책 의 하나로 적극 활용하려 나서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하여 전직 조지 부시(George W. Bush) 대통령이다.

 

(3) 크리슬람 운동은 종교혼합주의의 모델

 

크리슬람은 아프리카 전통신앙의 영향을 받은 신비주의적 무슬림에 의해 시작된 전형적인 종합혼합주의적인 신생 사이비 종교이다. 크리슬람을 창시한 삼수딘 사카의 집회는 꾸란 암송과 기도로 시작하고, 기독교 찬송과 무슬림 찬양을 요란하게 부르며 오순절식(Pentecostal style) 예배를 드린다. 사카는 설립 때부터‘Chrislam’이라 하였고, 신자들에게 종교 갈등을 치유하는‘herbalist’ 라 불렸다.

 

크리슬람은 근본이 완전히 다른 두 개(기독교와 이슬람)를 인위적으로 하나로 만든 사이비 혼합주의 종교운동에 불과하다. 이 운동의 영향은 이슬람 지역 선교에서 상황화란 명목 하에 진행 중인 내부자운동’(insider movement)에 까지 미쳤으며, 십자군 전쟁 등으로 갈등관계에 있던 로마 가톨릭이 종교간 대화 (Interfaith Dialogue)라는 명분으로 이슬람과 접촉을 해오다가 교황 바오로 2 세 때 적극적으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1985년 교황 바오로 2세는 이슬람 국가인 모로코를 방문하여 카사블랑카의 한 무슬림학교에서 크리슬람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연설을 했다. 교황은 기독교인들과 무슬림들에서 우리는 신앙적으로, 인간적으로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같은 세상에 살면서 다양한 고통의 흔적도 있지만 한편 많은 희망적 조짐들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우리들(기독교인과 무슬림)에게 아브라함은 바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모델이요,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모델이며,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한 모델입니다.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피조물을 완전케 하시며 살아계시는 한 하나님, 우리는 그 동일한 하나님을 믿습니다(We believe in the same God).”

 

그로부터 22년 후인 20071013일 이슬람 종교학자 138명은 교황과 전 세계 기독교계 앞으로우리와 당신들 사이의 공통 표어(A Common Word Between Us and You)”라는 제목의 공개서신을 보냈다. 내용인즉 세계 인구의 절반이 넘는 이슬람과 기독교 간의 평화와 정의가 없이는 진정한 의미의 세계 평화는 없다는 문장으로 시작하여 이슬람의 경전(꾸란)과 기독교의 성경에서 견해가 일치하는 신앙, 즉 하나님 사랑(love of the One God)과 이웃 사랑 (love of the neighbour)이 평화와 조화의 기반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결국 로마 가톨릭의 교황이나 이슬람 학자들이 주장한 공통점은 아브라함의 후손들로서 동일한 유일신 하나님을 섬기고 있고 그분의 율법인 하나님 사랑이웃사랑의 근본 신앙으로 하나가 되자는 것이다. 교황은 나아가 기독교의 에큐메니컬 진영과도 교회 일치라는 슬로건으로 연합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 계명처럼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20:7)는 말씀을 명심하여 경거망동하게 신앙생활해서는 안될 것이다.

 

2. 내부자운동(Insider Movement)

 

내부자운동은 이방종교 집단 내에서 이루어지는 교회개척의 새로운 패러다임 중 하나로 국내외 선교계의 뜨거운 이슈로 다뤄지고 있다. 내부자운동은 이슬람·불교·힌두교 등 다양한 종교적 그룹의 사람들이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그대로 머무른 상태에서 예수를 따르고 복음을 전하는 운동으로 주로 이슬람권 에서 상황화 된 선교전략으로 시행되고 있다. 내부자운동은 랄프 윈터(Ralph Winter)와 존 트라비스(John Travis), 케빈 히긴스(Kevin Higgins) 등에 의해 주창되어온 것으로 전방개척선교(Mission Frontier)전략의 한 방법으로 거론되고 있는데, 영적전쟁터의 최전방에서 개척선교를 해야 하는 무슬림선교에 효과적인 맞춤선교전략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내부자운동은 현재의 이슬람 신앙형태를 버리지 않은 채 예수를 믿고자 하는 운동이다. 그래서 내부자운동은 기독교와 이슬람의 서로 다른 신학과 세계관을 포용하는 종교혼합주의적 성향을 띄고 있다. 나아가 내부자운동가들 (내부자운동을 주장하거나 실천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용어로 필자가 만듦)은 무슬림들이 받아드리기 힘든 신학적 교리나 성경의 용어는 바꾸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행위는 아무리 전도의 목적을 이루는 것이라 할지라도 성경적이 지도 않고 선교학적으로도 맞지 않다. 내부자운동은 분명히 종교혼합주의운동이다. 내부자운동을 강력하게 반대하는 대표적 이슬람 전문가는 조슈아 링겔 (Joshua Lingel)이다. 그가 쓴크리슬람, 성경적 관점에서 본 내부자 운동이 내부자운동을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 책은 성경적 관점에서 내부자운동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는데, 이 책을 주도한 링겔은 현재 내부자운동을 반대하는 단체인‘i²Ministries’(i²Islam Institute)의 창립자 및 대표로 있다.

 

(1) 성경은 인위적으로 가감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

 

내부자운동가들이 저지른 가장 큰 범죄행위는 무슬림 선교를 위한다는 명목 하에 성경을 의도적으로 오역(誤譯)한다는 것이다. 성경은 사람들이 상황에 따라 마음대로 수정 보완할 수 있는 책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율법의 한 획이 떨어짐보다 천지가 없어짐이 쉬우리라”(16:17)고 함으로 성경말씀의 한 획이라도 삭제되거나 임의로 수정해서는 안 되는 것임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왜냐하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딤후 3:16)이며,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벧후 1:20),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벧후 3:16)고 경고하고 있다.

 

그럼에도 내부자운동에서는 성경을 수정하여 번역하고 있다. 그들은 성경 가르침의 어떤 부분을 무슬림들의 선입견에 맞추어 적응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내부자운동은 무슬림들로 하여금삼위일체 하나님대신알라, ‘아버지 하나님대신 주님으로, ‘하나님의 아들대신 메시아로 바꿔 번역 하여 읽게 하고 주일날 교회 대신 금요일 모스크에서 이슬람식으로 예배하도록 한다. 이런 번역을 수용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무슬림 관용구 번역본이라고 하고, 이를 반대하는 사람들은무슬림 맞춤형 번역본이라고 한다.

 

내부자운동가들은 성경의 용어를 바꾼 이유를 무슬림들에게 선교의 접촉점을 만들기 위함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이슬람 상황에서 공개적인 기독교로의 개종은 죽음 또는 그에 버금가는 핍박이 있기 때문이라고 합리화한다. 내부자운동의 권위자인 케빈 히긴스(Kevin Higgins) 목사는 성경적 내부자운동은 사도행전에 나타난 예수운동의 특징들과 분리될 수 없다고 주장해 왔다. 곧 내부자운동 이 성경적이라는 의미이다. 그는 이 예수운동의 특징을 여섯 가지로 분류했는데, 기도하는 것, 사도들의 가르치는 것과 교제하는 것, 떡을 떼며 기도하는 것, 성전과 집에서 모이기에 힘쓰는 것, 지도자들이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는 것, 관 계 중심의 제자도 등이다.

 

하지만 히긴스는 사도행전의 예수운동(그의 용어를 따라서)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초대교회의 예수운동은예수가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다는 것을 믿고 증거 하는 운동이었다. 예수운동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심으로 모든 믿는 자들의 구주가 되심을 선포하는 운동이었다. 그런 데 내부자운동은 어떤가? 예수님의하나님 아들 되심을 이슬람식으로 교묘하게 바꿈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성자 하나님)을 부인하게 하고, 예수님의 십자가 의 죽음과 부활을 인정하지 않는 무슬림들에게 메시아로 바꿔 부르게 함으로 기독교의 근본을 수정해버리는 반 기독교적 이단의 형태를 보이고 있다.

 

기독교의 신조(信條)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인 예수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16:16)에 기초하고 있는데, 이것을 이슬람식으로 바꿔버리고, 바꿔진 신조를 믿는 자들을 내부자적 그리스도인이라고 인정해주는 큰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죄 사함을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외적 표징이 세례이다. 그런데 세례를 받기 전에 반드시 믿고 고백해야할 것이 사도 신경이다. 사도신경은 삼위일체의 제2위의 하나님이신 성자(하나님의 아들)의 구속사역을 자세하게 고백하는 기독교 교리의 핵심이요 반드시 믿어야할 신조 이다. 이 믿음과 고백이 없으면 절대로 그리스도인이 될 수가 없다.

 

앞서 우리는 이슬람에서 자신들의 신변을 보호하고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거짓말로 위장하기 위한 타끼야’(taqiyya) 교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종교의 특성 중 하나가 고도의 윤리성인데,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거짓으로 위장하는 것은 종교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행위이다. 그래서 이슬람의 윤리성을 비판했던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에서도 선교적 목적이라는 명분하에 위장된 교리를 가르치고 심지어 성경을 하나님의 계시대로 번역하지 못한다면 그 것으로 이미 종교의 정체성과 정당성을 잃어버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 진정한 회심은 하나님께로 전향하는 것

 

기독교에서 말하는 회심’(conversion)의 의미는 무엇일까? 먼저, 회심의 신학적인 의미를 존 칼빈은 기독교 강요(Institutio Christianae Religionis)에서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하나님께 대한회심을 전체적으로회개란 말로 이해하며, 믿음이 이 회심의 중요한 부분이라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회개의 실제 뜻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떠나서 하나님께로 향하며, 우리의 이전의 마음을 벗어버리고 새 마음을 입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회개는 우리의 생활을 참으로 하나님께로 전향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순수하게 또 진실하게 두려워하기 때문에 전향하는 것이다. 그리고 회개는 옛 사람과 육의 죽임(mortification)과 성 령의 살림(vivification)으로써 구성된다.

 

칼빈에 따르면 옛 사람(old man)과 육(flesh)은 원래적 본성의 부패를 의미하는 것으로 회심되기 이전의 사람의 영적·육적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사람 이 예수를 믿고 회심했다는 의미는 옛 사람과 육체의 삶을 죽이고(청산하고) 성령 안에서 다시 사는 것(재창조)이다. 바울은 이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new creation)이라고 했다(고후 5:17). 그는 또한 회심한 사람을 가리 켜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라고 했다(3:9-10). 그러므로 이방인(이교도)이 그리스도인으로 회심했다면 당연히 옛 사람의 성품과 믿음과 세계관을 청산하고(죽이고)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되어 삶의 방향이 하나님께로 전향(conversion)되어야한다.

 

다음으로, 문화학적인 의미에서 회심의 핵심은 세계관의 변화(worldview innovation)이다. 복음은 결국 변형된 삶에 관한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증언한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이전의 삶을 조금 수정하도록 권유하는 정도가 아니 라 그들을 완전히 새로운 삶(重生)으로 초대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세계관 을 비롯하여 문화의 모든 차원이 변하는 것을 뜻한다. 이 변형은 근본적 (fundamental)이고 물리적·생물학적·심리적·사회적·영적인 것을 망라한 총체적인 변형(wholistic innovation)이다. 폴 히버트(Paul Hiebert)는 문화학적인 의미에서의 회심과 세계관의 변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행위의 변화가 19세기 선교 운동의 초점이었고, 믿음의 변화가 20세기 운동의 초점이었다면, 21세기에는 세계관의 변화가 핵심 과제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진정한 회심은 마음만의 변화(change)가 아니라 삶의 실제적인 전향 (conversion)이어야 한다. 회심은 마음뿐만 아니라 행위의 변화가 동반되어야 한다. 사도행전 214절 이하는 오순절 날 성령충만했던 베드로가 유대인들을 향하여 설교한 내용이다. 베드로의 설교는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이 주제였고 그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베드로의 설교를 듣던 많은 사람들 중에 놀라운 회개의 역사가 일어났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37)라고 물었다. 이에 베드로는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38)고 했는데, 곧 진정한 회심을 요구한 것이다. 그러자 그들 중 삼천 명 정도의 큰 무리가 세례를 받아 최초의 교회를 이루었다(41). 당시 그들은 유대교 사회 안에서의 그리스인들이었다. 마치 이슬람국가 안의 기독교인들과 같은 처지였다. 그러나 그때의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내부자처럼유대교 회당에서 예배드리거나 할례와 율법을 준수하거나 유대인처럼 살면서 그리스도인이라고 하지 않았다.

 

그들로 시작된 초대교회 성도들은 유대교 혹은 이방종교로부터 그리스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모든 손해를 감수하고 흩어졌으며, 박해를 받았으며, 심지어 죽기(순교)까지 했다. 그렇다면 초기 성도들은 내부자운동의 지혜(?)를 얻지 못해서 그런 박해를 감수했단 말인가? 그들도 내부자운동의 관점에서 보자면 얼마든지 할례 받고, 율법 지키면서 예수 믿으면 된다는 식으로 유대율법주의를 수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바울은 유대주의자들이 복음을 폄하하고 율 법(할례 등)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성도들을 혼란하게 했던 갈라디아교회에 보낸 서신을 통해 복음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것을 다른 복음으로 규정하고 이것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선언했다(1:6-12).

 

또한 고린도교회를 향해서도 만일 누가 가서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라고 지적 하면서 다른 예수를 전파하는 다른 복음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강조했다(고후 11:4).

 

사도행전 7장은 기독교 역사상 최초의 순교자였던 스데반의 설교와 장엄한 순교의 장면을 기록하고 있다. 스데반이 순교했을 때 그는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고 소리쳤다(7:56). 끝까지 신앙을 지키고 장렬하게 순교한 스데반을 하늘의 성부와 성자가 맞이하신 것이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이런 스데반의 곁에서 담대하게 말하게 하셨고, 하늘의 장면을 볼 수 있는 영안을 열어주셨고, 순교할 수 있는 용기를 주셨다(6:10). 스데반의 순교는 이와 같이 성삼위 하나님에 대한 그의 신앙을 공개적으로 고백했기 때문에 죽은 것이고 그런 스데반을 성삼위 하나님께서 받아주신 것이다. 만일 그가 내부자운동처럼 유대인처럼 살고, 유대인처럼 말하고, 유대인처럼 율법과 의식 을 지키고, 유대인 회당에서 유대식 제사를 지내고, 유대인처럼 예수 그리스도 를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일개 마리아의 아들로 고백했다면 왜 죽였겠는가? 이 런 의미에서 볼 때 내부자운동은 스데반의 순교를 헛되게 하고 있는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도 스데반처럼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박해를 받았던 많은 믿음의 선진들의 모습에 대해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 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 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고 기록하고 있다(11:35-38). 이들이 당시의 상황에 맞는 지혜로운(?) 내부자운동을 했다면 왜 이런 고난을 자처했겠는가?

 

(3) 선교의 열매는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 베풂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회개했던 자들에게 베드로가 요 구했던 것은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2:38)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세례는 죄 사함을 받고 그리스도와 연합(접붙임)하여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외적인 표징이기 때문이요 우리는 세례 받음을 통해 우리의 신앙을 공개적으로 증언하기 때문이었다. 베드로의 요구는 마태복음 28:18-20에 기록된 예수님의 대위임령(The Great Commission)에 대한 순종함이었다.



이 대위임령에 의하면 선교의 궁극적인 열매는세례를 베풀어 교회를 세우고 제자들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세례는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으로, 곧 성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베풀라고 지정하셨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도 성삼위 하나님께서 동일하게 역사하셨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내부자운동가들이 이에 대해 답변을 해야 한다. 삼위일체 하 나님을 부인하고, 2위의 하나님이신 성자(하나님의 아들)를 하나님의 아들이 라 말하지 못하면서 누구의 이름으로, 그리고 어떻게 세례를 베풀겠다는 것인지! 혹시 이 문제를 넘어가기 위해 세례의 필요성까지 부인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스도인’(Christian)은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그분의 지체가 될 때 비로소 주어지는 거룩한 호칭이기 때문이다(6:3-5; 고전 12:13; 벧전 3:21).

 

내부자운동가들에게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은예수님의하나님 아들 되심(聖子)’을 부인하고(혹 다른 용어로 대체하고) 어떻게 세례를 베풀 수 있는지?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와 단절되어 모스크에서 샤하다를 하는 무슬림-크리스천(내부자)들에게 세례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지?”등이다. 이동주 박사는 제24회 기독교학술원 영성포럼(주제: 이슬람 대책과 한국교회) 이슬람의 세계관: 내부자운동의 번역 성경과 상황화 신학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발표문에서내부자운동 선교방법론은 현대 종교다원주의와 상황화 신학의 영향을 받은 기독교적 거대 체구인 WCC와 로마 가톨릭이 점차 반개종주 의적으로 기울어지는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또한 이런 내부자운동가들의 잘못된 태도는 사도적이고 성경적인 복음을 상실할 뿐만 아니라, 반개종주의적인 종교통합체로 변질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리고 그는 내부자운동 신자들은 결국 무슬림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4) C1-C6 스펙트럼(Spectrum)

 

C1-C6 스펙트럼은 내부자운동의 선두 주자인 존 트라비스(John Travis)에 의해 개발된 무슬림 세계에서 발견되는 그리스도중심 공동체(Christ-Centered Communities)의 유형을 비교 대조하는 것이다. 스펙트럼의 6가지 유형은 언 어, 문화, 예배형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예배드릴 때의 자유함 정도, 종교적 신분에 따라 구분된다.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예배함으로 복음의 핵심요소는 모든 그룹이 같다고 전제한다.

 

C1: ‘외부자의 언어를 사용하는 전통적 교회로 무슬림 땅 안에서 발견되는 전통적 교회들(개신교, 가톨릭, 정교회 등)이 있다.

 

C2: ‘내부자(아랍어)의 언어를 사용하는 전통적 교회로 언어를 제외하고는 C1과 동일한 교회로서, 종교적 단어들은 비 이슬람 용어를 사용한다.

 

C3: ‘내부자 언어와 종교적으로 중립적 내부자 양식을 사용하는 상황화된 그 리스도 공동체로 이슬람 적 요소(신앙과 교리)는 걸러지고 순수한 문화 적 양식만을 사용하는데, 이들은 대부분 무슬림 배경의 신자들로 구성된 공동체이다.

 

C4: ‘내부자 언어와 성경적으로 수용가능한 문화적 양식과 이슬람 양식을 사용하는 그리스도 공동체C3와 비슷하지만 성경적으로 수용 가능한 양식과 실행이 포함된다(, 손들고 기도하기, 라마단(금식월) 지키기, 허가되지 않은 음식(하람 식품) 피하기, 이슬람 용어와 의상 사용하기 등).

 

C5: ‘예수를 믿는 무슬림(메시아닉 무슬림)’으로 법적·사회적으로 이슬람 공동체 안에 머문다. 이들은 이슬람의 종교의식도 지킨다. 그러나 개별적으로는 무슬림 공동체로부터 쫓겨날 수도 있지만, 마을 전체가 그리스도를 믿는 곳에는 메시아닉 모스크(Messianic Mosque)가 세워진다.

 

C6: ‘소규모 그리스도 중심 공동체로 비밀 지하단체의 그리스도인들로서 이 들은 주로 라디오, 전도지, 해외 체류기간 중 전도됨, 또는 스스로 성경을 읽고 그리스도인으로 개종된 자들이다. 이들은 발각될 시 추방, 투옥, 살 해 등의 위험에 놓여 있다. 그럼에도 비밀리에 예배하고 다른 무슬림들에 게 비밀리에 전도활동을 하면서 외적으로는 무슬림의 신분으로 살고 있 다.

 

트라비스가 정리한 이 스펙트럼에 대해 어느 유형까지를 그리스도인으로 인정할 것인지에 대한 논쟁도 뜨겁다.

 

4) 메시아닉 무슬림(Messianic Muslim)은 무슬림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용어인데, 이 용어는 유대인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메시아닉 쥬(Messianic Jews) 에서 유래되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예수 그리스도를 인류의 메시아(그리스도)로 인정하면서도 각 자의 종교적 절기나 의식을 따른다는 것이다. 사실 메시아닉 유대인이라는 용어는 1895년에 유대인으로써 기독교인이지만 유대교에 더 가까웠던 사람들을 일반적인 기독교인과 구별하기 위해 기독교에서 붙여졌던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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