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흥(행3:1-11, 합3:1-3)
부흥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부흥은 사람의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부흥은 우리의 태도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부흥은 오직 하나님에게서 옵니다.
그 거룩한 부흥은 하나님이 행하실 때 옵니다.
그러므로 부흥은 사람의 일이 아닙니다.
부흥은 오직 거룩하신 하나님의 일입니다.
한국교회가 부흥을 고민하지 않을 때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130년 한국교회가 오늘날처럼 부흥 딜레마에 빠진 적도 없었습니다.
1980년대 한국교회 성도들이 무너졌습니다.
1990년대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무너집니다.
2000년대 한국교회 지도자들도 무너집니다.
1980년대 무너지던 한국교회를 지탱해 준 것은 옥한흠 목사였습니다.
그는 잠자던 평신도를 깨워서 제자로 만들었습니다.
1990년대 허물어지던 한국교회 목회자들을 그나마 세웠던 것은 성령운동이었습니다.
하지만 2000년대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속수무책으로 무너집니다.
한국교회가 무너집니다.
많은 해결책이 제시됐습니다.
회개하자고 부르짖었습니다.
교회 본질을 회복하자고 외칩니다.
선교가 교회본질이라고 합니다.
기도해야 교회가 살 수 있다고도 합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돼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부흥은 우리 인간의 일이 아닙니다.
부흥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무엇이 성도들을 성도답게 합니까?
무엇이 교회를 교회답게 만듭니까?
어떻게 해야 우리 예배가 예배다울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해야지 한국교회가 다시 부흥할 수 있을까요?
콕콕 쑤시는 고구마전도도 했습니다.
호떡 굽는 기계와 호떡 재료 팔아먹는 호떡전도도 합니다.
교회 앞에 파라솔 펴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차를 대접하는 파라솔전도도 있습니다.
아직도 먼가가 더 부족합니까?
얼마나 더 기도해야 합니까?
선교가 모자랍니까?
구제와 봉사가 충분하지 않습니까?
우리 청년들의 경배와 찬양이 아직도 부족합니까?
여러분.
교회를 교회답게 하는 것은 성경 말씀입니다.
성도를 성도답게 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한 분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첫 번째 본문은 사도행전 3장입니다.
사도행전 3장에서, 성전 앞 앉은뱅이가 요구하는 것은 돈입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이 줄 수 있는 것은 돈이 아니라, 예수입니다.
‘나는 가진 돈이 없다. 그러나 나에게는 예수가 있다. 그 예수가 너를 일으키신다.’
베드로는 예수의 이름을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손을 내밀어, 그 앉은뱅이를 일으켰습니다.
그러자 그 앉은뱅이가 벌떡 일어났습니다.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죽었던 다리에 생명이 역사했습니다.
움직이지 않던 근육이 살아났습니다.
소망 없던 인생이 예수의 이름으로 새 출발합니다.
오직 예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수많은 앉은뱅이를 모았다고 해서 부흥은 아닙니다.
진정한 부흥은 예수의 이름으로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수많은 시체들을 한 곳에 모았다고 해서 부흥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부흥은 죽은 나사로가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거룩한 부흥은 앉은뱅이가 일어서는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진정한 부흥은 디메오의 아들 바디메오가 눈을 뜨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오늘날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예수입니다.
이제 그 구원의 이름, 예수! 그 예수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그 곳에서, 참된 구원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부흥이 시작됩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그 많은 돈을 들여서, 수많은 앉은뱅이를 모으고 있습니다.
또 그 앉은뱅이들을 돌볼 사람들을 양육하고자, 많은 프로그램을 시행합니다.
그러나 교회가 그러면 그럴수록 부흥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왜? 헬라인이 구했던 지혜를 구합니까?
왜! 유대인들이 구했던 표적을 원합니까?
고전1:22절.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그리스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원합니다. 부르심을 받은 우리에게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18세기 영국의 대부흥은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시작됐습니다.
그 부흥은 요한 웨슬리와 그 동생 찰스 웨슬리 형제가 만든 Holy Club에서 시작됩니다.
그들은 그 모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했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체험하기를 소망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경험한 그 영적체험을 나누고, 주위 사람들에게 전했습니다.
하나님의 부흥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그 거룩한 부흥의 물결이 세계로 퍼졌습니다.
1907년 평양대부흥은 장대현교회에서 열린 사경회에서 일어났습니다.
한국교회를 뒤흔든 대부흥은, 집회 마지막 날에 일어났습니다.
한국교회 지도자 길선주 장로는 자신의 죄를 고백합니다.
“저는 아간 입니다. 하나님께서 나 때문에 축복하실 수 없습니다. 나는 1년 전, 내 친구가 임종하면서 맡긴 재산을 관리하면서, 그 친구의 미망인의 돈, 100불을 가로챘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가로막았습니다.”
그 순간! 장애물이 걷혀졌습니다. 어둠이 물러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가 시작되자, 지옥 뚜껑을 열리는 광경이 벌어졌습니다.
죄의 자각이 온 교회, 모든 성도들을 휩쓸어버렸습니다.
그날 저녁에 시작된 예배는, 다음 날 새벽 2시가 되어도 끝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때까지도 아직 수십 명이 울면서 자신들의 죄를 고백할 차례가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한국교회 부흥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그렇다면 회개가 부흥의 시작입니까? 아닙니다.
놀랍게도 회개보다 앞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당시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는 열심히 특심이었습니다.
한국교회 위에 불어 닥친 부흥의 물결은 성경공부에서 시작됩니다.
교인이라면 누구든지 성경을 배웠습니다.
한 해에 1400여 회의 사경회가 열리고, 9만 명의 학생들이 참석했습니다.
지금의 부흥회가 아니었습니다. 오직 성경을 배우기 위한 사경회입니다.
가정예배를 지키지 않는 사람은 출교 위험을 감수해야 할 정도로 성경공부에 매달렸습니다.
사업 차 여러 곳으로 다녀야 했던 교인들도 성경을 들고 다녔습니다.
당시 한국교회 목사, 전도사, 집사들은 일본사람들에 의해 억울하게 감옥에 가야만 했습니다.
그들은 감옥에 갔지만, 불평 대신 성경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한국교회를 부흥시켰습니다.
마태복음 13장에도 하나님 나라 이야기, 하나님 나라의 부흥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부흥은 하나님의 말씀이 세상에 뿌려지면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세상에 뿌려지면서 30배, 60배, 100배의 부흥을 가져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부흥을 가져옵니다.
오늘날 교회가 성경을 배웁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있습니까?
대신 교회 일로 바쁩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부흥에서 멀어졌습니다.
강단은 어떻습니까?
한국교회 강단에서 하나님의 부흥의 씨, 그 생명의 씨가 뿌려지지 않습니다.
설교는 있는데, 계시는 없습니다.
교훈은 있는데 복음은 없습니다.
도덕적 요구는 많은데, 하나님이 행하신다는 복음을 들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율법과 계명은 있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복음은 없습니다.
부흥은 그리스도인의 잘난 삶으로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부흥은 더 도적적인 그리스도인들에게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더 높은 자리에 오른 그리스도인에게서 부흥을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부흥을 원하십니까? 예수, 그 이름을 부르십시오.
거룩한 부흥을 원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여!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쥐십시오, 성경을 펼치고, 그리고 읽으십시오.
말씀으로 임하시는 하나님 나라, 그 부흥을 기대하고 기대하십시오.
부흥은 성경을 펼치고, 그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 일어납니다.
얼마 전 미국의 존 맥아더 목사는 한 인터뷰에서, 130년 한국교회가 잃어버린 것은 성경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을 잃어버린 한국교회, 부흥은 없습니다.
예수를 잃어버린 한국교회, 모든 것을 잃은 것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한 소망이 있다면, 예수! 그 이름뿐입니다.
한국교회 부흥은 하나님의 말씀이 뿌려지는 것뿐입니다.
한국교회 가운데, 우리 교회 가운데 하나님이 행하실 때 부흥이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