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歸農)은 농업을 주업으로 자신의 주된 주거지를 도시에서 농촌으로 옮기는 것이다. 생활에 필요한 소득의 대부분을 영농을 통해 조달하는 것이다. 귀촌(歸村)은 농업을 주업으로 하지 않고 자신의 주된 주거지를 도시에서 농촌으로 옮기는 것이다. 생활에 필요한 소득의 대부분을 농업 이외의 부분에서 조달하는 것이다. 정부는 2019년 귀농, 귀촌 흐름을 2020년 7월에 발표하면서 코로나19 이후 귀농·귀촌 인구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코로나19로 제조업과 서비스 등 고용시장이 충격을 받은 이유다. 이미 농림어업 취업자 수도 155만 1,000명으로 전년 같은 달보다 3.6%(5만 4,000명) 늘어났다. 지난해 4월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코로나19 이후 농업농촌에 대한 도시민의 인식과 수요 변화>에 따르면, 귀농·귀촌 의향이 증가했다는 응답(20.3%)이 감소했다는 응답(8.2%)보다 높게 나타났다. 또 코로나19 이후 농업과 농촌의 공익적 기능의 중요성이 커졌다고 응답한 비율도 69.5%에 달했다. 이에 농식품부 관계자는 "코로나19 이후 저밀도 농촌 생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데다,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면 새로운 삶과 기회를 찾아 농어촌으로 이주하는 세대도 늘어날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미 인구절벽 앞에 고사위기에 놓인 농어촌교회가 늘어나는 귀농, 귀촌 인구에 대한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래서 귀촌했다가 6개월 만에 귀농인으로 변신한 정은영 장로와 김연옥 권사 부부를 만났다. 그리고 이 부부를 따라 귀촌한 지 3개월째를 맞이한 박노현 성도와 심정순 집사 부부도 만났다. 김연옥 권사(7기)와 심정순 집사(6기)는 은평구의 ‘이야기할머니’에서 만났다. 이야기할머니는 60여 시간의 교육과정을 이수한 여성 노인들이 자원봉사로 유아교육 기관에서 어린이들에게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단체다. |
이충석 목사
동강교회 이충석 목사는 귀농귀촌인에게 이렇게 말한다. “귀농귀촌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내가 들어간 그 마을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자 해서는 안 된다. 내가 여기서 얼마나 잘 살지를 생각해야 한다. 내가 사는 이 마을을 변화시키겠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 먼저 그 마을정서를 충분히 받아들여야 교제가 된다. 내가 예수 믿는다며 우월성을 나타내면 귀농귀촌은 실패한다. 나는 우리 성도들이 주일에 출석하지 않아도 그냥 둔다. 왜냐하면 이미 이들은 하나님과 교회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일에 출석하지 않았다고 문제제기를 하고 압박을 하면, 이들과 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담이 생겨 거리가 멀어지고 만다. 그런데 가만히 그냥 두면, 관심을 가져달라며 나를 찾아온다. 그때 다독여주고, 위로해 주면 된다. 아프고 힘든 사람들은 우리 부부가 반드시 찾아간다. 이런 오지에서 날마다 집집마다 찾아가서 교회로 오라고 해도 와지지 않는다. 다만 이들이 언제 교회를 찾아올지가 관건이다.
정은영 장로와 김연옥 권사는 농어촌시니어선교사로 파송을 받고 귀농했다
정은영 장로(69세)는 의정부 창화교회를 섬기다 2020년 10월 28일 귀촌했다가 지금은 특별한 귀농인이 됐다. 예장통합 창화교회에서 농어촌시니어선교사로 파송하고 예장합동 동강교회는 농어촌시니어선교사로 받았다. 지금은 농협에 2000평 황기농사를 짓는 농업인으로 신고까지 마쳤다. 그가 농사를 시작한 것은 일 잘하는 부인 김연옥 권사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33년 동안 서울시 공무원으로 재직하고 명예 퇴직했다(1976년-2009년). 그리고 일반 기업에서 12년을 근무하고 은퇴했다. 지금은 종로1가에 위치한 한 오피스텔에 행정사 사무실을 열고 월요일만 출근해서 주로 건설업 컨설팅을 하고 있다.
나는 3년 전 베트남 선교지 방문을 했다가 목욕탕에서 넘어졌다. 그때 미세한 뇌출혈이 발생했는데, 그 사실을 모르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2개월을 더 버텼다. 결국 경희대학교 병원에서 수술을 했다. 그 병실에서 멀쩡하게 퇴원한 사람은 나 한 사람뿐이었다. 수술은 했지만, 2% 부족한 사실을 나도 안다. 그래서 아, 이것은 아니라고 싶어서 귀촌을 결정했다. 그때까지도 나는 동강교회 이충석 목사를 몰랐다. 내 아내 김연옥 권사가 이 목사를 잘 알고 좋아해서 동강교회에 자주 방문했다. 그래도 동강으로 들어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나는 이 목사를 만나고서는 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오지에서 30년을 목회하고 살았다? 동강교회 이충석 목사처럼 신앙생활을 안 해 보았다면, 하나님 앞에 가서 할 말이 없겠다고 생각했다. 이 목사께서 다시 오직 사역을 시작하면 그 발걸음을 뒤따라가겠다. 이 목사는 ‘전도의 인생을 걸라’는 책의 기록처럼,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대가도 없이 28년을 오지전도를 했다. 그렇게 신앙생활하면서 이 지역을 이끌어 오신 모습을 보고, 나도 함께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동강에 들어왔다. 만약 나에게 다시 어려움이 찾아와서 하나님 앞에 선다면, 나는 이충석 목사를 따라 다니다가 왔다고 말하겠다.
좌로부터 합동기독신문 오준환 목사, 정은영 장로와 김연옥 권사, 심정순 집사와 박노현 성도 그리고 이충석 목사이다
꼭 동강이 아니더라도 무조건 귀농귀촌을 해야 한다. 은퇴자들의 도시생활을 보면, 오전에 만나서 당구와 같은 오락을 하고 저녁이 되면 술을 먹는다.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 내가 동강에 있어도 많은 친구들이 찾아온다. 그러면 귀농귀촌해서 편안한 삶을 살라고 권유한다. 신앙생활을 원한다면 젊은 동강교회 이충석 목사와 함께 하면 더 좋지 않은가.
우리 부부는 특별한 비전은 없다. 이충석 목사께서 이 동강에서 견디고 버티고 오신 것처럼, 우리도 아무런 조건도 없이 설령 억지로라도 함께 견디고 함께 버티는 삶을 살고 싶다. 우리 부부가 백보를 가는 것보다 함께 한 걸음을 가고 싶다. 천천히 가더라도 함께 가는 것이다. 동강교회와 이충석 목사와 함께 살고, 같이 있다는 자체만이 의미가 있다. 보통 농촌교회 목사들은 은퇴했거나 연세가 많으신 분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충석 목사는 이미 동강교회에 30년을 보냈는데도 아직도 젊은 목회자요, 매력 그 자체이다.
박노현 성도는 부인 심정순 권사의 손에 이끌려 동강 사람이 됐다
박노현 성도(76세)는 2021년 2월 26일 귀촌해 마당에서 작은 텃밭을 가꾸고 있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가정 형편상 대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군대 간부로 입대했다. 그러다 그만 사고가 나서 일발사병으로 제대했다. 그러나 결국 신촌의 한 대학에 들어갔고, 졸업 후에는 24살부터 삼성그룹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1966년 6월에 창립된 동방유량(지금은 사조그룹 계열사)을 거쳐서 교보생명 의정부지점 영업국 국장으로 근무하고 은퇴했다.
오랜 사회생활에 지친 남편의 모습을 본 부인 심정순 집사가 건강하고 오래 살기 위해 귀촌을 권유해서 성사된 경우다. 귀촌을 위해 그동안 여기 저기 알아보고 다녔다. 정은영 장로와 김연옥 권사가 동강으로 귀촌해서 함께 살자고 권유했다. 작년에 1차 답사를 위해 이곳에 와서 동강교회 이충석 목사의 안내를 받았다. 그때 당시 이충석 목사는, 전형적인 목사의 모습이 아니었다. 마치 탤런트 같이 미남이면서 때 묻지 않은 얼굴이었다. 어떻게 보면 사이비 목사처럼도 보인다. 도무지 시골에 사는 목사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그때 이 목사께서 나를 데리고 정선군 일대를 돌아보았다. 그때 아마 내가 귀촌할 사람인지 탐색했을 거예요.
좌로부터 합동기독신문 오준환 목사, 심정순 집사와 박노현 성도 부부, 정은영 장로와 김연옥 권사 그리고 이충석 목사이다
처음에는 강원도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휴가철이면, 만만한 것이 강릉, 속초 가자는 정도였다. 지금은 동강에 들어온 것이 마치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특히 제 집사람이 교회에서 선교활동을 많이 한 결과인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것 같다. 인간의 힘과 생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일단 들어와서 이 집에 살다보니, 前 집주인이 대학교 교수였는데 집안관리와 정원관리를 아주 마음에 들게 해 놓으셨다. 동서남북을 바라보니 마치 여기가 천국인가 싶다. 또 좋은 이웃, 정은영 장로와 김연옥 권사 그리고 동강교회 이충석 목사께서 떡 하니 버티고 있으니 외롭지는 않겠다고 생각한다. 지금, 아주 만족한다. 내가 사는 이 마을이 8가구인데, 옛날부터 함께 살았던 사람으로 여겨진다.
나에게 있어서 동강교회도 동강교회이지만, 이충석 목사께서 다목적으로 영농생활과 선교도 하신다. 그리고 마을 전체 농수산물을 모아서 판매의 교량역할도 하신다. 이런 강한 움직임에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아무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대개 목사들은 마을에 전도와 선교에만 몰두하시지 않는가. 그런데 이미 이 목사께서는 지난 30년을 선교에 임하셨기에 수동면, 신동읍 운치리 마을 구석구석을 다 아시고, 마을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고 계신다. 그들이 비록 교회는 출석하지 않지만, 거의 동강교회 성도들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동강교회가 일취월장 발전할 것을 확신한다. 동강교회는 단순한 시골교회가 아니라, 지금도 정선군에서 빼놓을 수 없는 독보적인 교회다.
나는 학창시절 미션스쿨에 다녔기에 성경에 대해서도 조금 알고 있다. 또 제 집사람이 교회에서 선교 활동하는 것도 지켜보았다. 언젠가는 나도 제 집사람을 따라 신앙생활을 시작해야지 하던 터에 동강교회에 들어왔다. 지금은 김항안 목사의 책, ‘성도가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63가지’를 탐독하고 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진지하게 이충석 목사께 기독교 입문 교육을 받겠다. 일단 올 한 해 동안은 일단 동강교회와 이 마을을 지켜보다가 제 자리를 찾아보겠다. 아무래도 이 지역에서도 나만의 영업인 전도를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사람을 만나는 것이 주된 업무였다. 그러므로 저는 누가 시켜서 하는 것보다 원하는 일을 만들어서 하는 스타일이다.
TV 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를 보면 아주 낭만적이다. 귀농귀촌을 생각한다면 일단 몇 달을 살아보고 결정해라. 3개월을 살아보니, 주변에 일가친척과 이웃이 없으면 상당히 힘들 것이다. 농사를 짓겠다는 뚜렷한 목표의식 없이, 나처럼 신앙생활을 해야겠다는 분명한 생각 없이는 뿌리내리기는 힘들다. 특히 젊은이들이 황폐해진 농촌과 농촌교회로 들어와서 생기 있는 마을과 교회를 만들어야 한다. ‘운치리’는 그 이름처럼 ‘운치’가 있어요.
심정순 집사는 서울 산정현교회를 15년 출석하다가 남편과 함께 귀촌했다. 심 집사는 ‘이야기할머니’에서 김연옥 권사에게서 바느질을 배웠다. 그러다가 교회일이라면 사라지고 없어지는 것이에요. 그래서 주변 선생님들과 함께, 김 권사의 남편이 목사가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러다 어느 날 김 권사께서 ‘이야기할머니’를 그만 두는 거예요. 그만두면서, 건강이 좋지 않은 남편과 함께 강원도에 간다는 말을 해요. 어느 날 ‘카카오톡’에다 강원도의 집이 찍힌 사진을 막 올리는 거예요. 그 사진을 보는 순간! 내 머리에 번개가 쳤어요. 바로 전화를 하고서는, 도대체 그 곳이 어디야! 무슨 일로 어떻게 가게된 거야! 그때! 동강교회 이충석 목사의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당장 이 목사의 전화번호를 달라. 이 목사를 만나야겠다. 그래서 남편과 함께 동강교회로 왔어요. 동강교회에서 하루를 보내면서 남편의 눈치만 봤죠. 그때까지도 귀촌 희망이 보이지 않았어요.
나는 남편에서 말하기를 “이제 우리 나이가, 어떻게 노년을 보람 있게 살다가 천국에 가야할 나이가 아닌가요. 나는 반드시 귀촌해서 믿음생활을 해야 했어요” 그러고 반드시 남편과 함께 귀촌하고 함께 신앙생활하기를 바랬어요. 당연히 처음에 남편은 극구 반대했어요. 그러나 나는 하나님께 기도했어요. 내 뜻대로 말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세요. 그런데 남편이 혼자 밤새 고민을 하고 아침에 일어나더니 얼굴이 달라져 있었어요. “당신의 뜻대로 하겠다”고.
그렇게 동강에 들어와 보니, 좋은 이웃과 좋은 교회 그리고 좋은 목사가 있으니 너무 감사하고 행복하다.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다 하나님의 은혜이다. 이충석 목사는 그동안 제가 만난 목사와는 너무 달랐다. 이 목사의 ‘전도에 인생을 걸라’는 책을 읽고 밤새 울었다. 이런 목사와 함께 있다면 우리는 분명 행복할 것이라는 확신이 왔어요. 그래서 남편에게 말하기를. 여보! 우리가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 곁에 이 목사가 계시면, 자식들보다 훨씬 나을 것이다. 이 목사는 우리가 죽어서까지도 우리를 책임져 주실 것이다. 더 이상 어떤 복이 있겠는가. 이렇게 설득했어요. 이충석 목사와 함께 하는 동강, 동강교회는, 우리가 행복하게 생을 마감할 수 있다고 믿어요.
귀농귀촌의 매력이 너무 많아요. 첫째는 동강교회와 이충석 목사께서 계시다는 것. 마을 사람들이 너무나 순박하고 착해요. 딴 곳은 잘 모르지만, 이 지역은 동강교회가 있어서 마을사람뿐만 아니라 귀농귀촌인들이 모두 행복하다는 사실이에요.
정선 5일장에 나와 점심식사를 했다